백제 웅진성 공산성, 1500년 역사를 품은 산성의 비밀

백제의 두 번째 수도, 웅진성의 정체

백제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는 475년 한강을 잃은 문주왕이 공주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공산성은 바로 이 절박한 순간에서 탄생한 백제의 웅진성으로, 64년 동안 백제 왕들의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부여의 사비성보다 먼저 백제가 정착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해발 110미터 능선을 따라 둘레 2,660미터로 펼쳐진 이 포곡형 산성은 초기 토성에서 시작해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방어 건축의 진화를 보여줍니다. 토성, 석성, 판축기법이 층층이 쌓여 있으니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

웅진성이 선택한 이유: 금강을 품은 천혜의 요새

백제가 공주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금강이 흐르는 이 땅은 신라의 남침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요새였습니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은 식수와 교통로를 제공했고, 산성의 높이와 형태는 방어에 유리했습니다. 의자왕 시대 당의 침략 속에서도 공산성으로 피신해 마지막 저항을 이어간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의미

공산성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단순한 명예가 아닙니다. 이는 1500년 한국 건축 기술의 진화와 동아시아 군사 건축의 발전상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백제역사유산지구의 중심으로서, 공산성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1500년의 층

백제 멸망 이후에도 공산성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신라는 이곳을 치소성으로 불리며 지방 거점으로 활용했고,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감영의 성으로 기능했습니다. 우리가 밟는 성벽 위에는 세 왕조의 손길이 모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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